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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설문

국제인권규약 채택 50주년 기념 국제학술회의 격려사

국제인권규약 채택50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 격려사(국립외교원)-11.24.hwp

1. 존경하는 윤덕민 국립외교원장님, 신각수 국립외교원 국제법센터 소장님을 비롯한 내외 귀빈 여러분!
먼저 국립외교원 국제법센터가 주관하여,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 규약(ICCPR): 성과와 과제’를 주제로 한 국제학술회의를 열게 된 것을 축하드립니다.
특히 한국까지 먼 길을 오셔서, 귀중한 발표를 해 주실 니나 조겐슨 홍콩 중문대학교 교수님, 스리프라파 펫차라메스리 태국 마히돌 대학교 인권· 평화 연구소장님께 감사드립니다.
2. 잘 아시다시피, 헌법은 국가권한의 행사를 법률과 정당한 절차에 의하도록 하고,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는 국가의 최고규범입니다.
국내적으로 외교 분야 활동도 공권력의 행사이므로 헌법에 따라 행사되어야 합니다.
헌법 제6조 제1항에서는 헌법에 의하여 체결·공포된 조약과 일반적으로 승인된 국제법규는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조약과 같은 나라 사이의 약속이나, 그 체결 절차 또한 실체적 정의를 실현하고 헌법의 정신이 가장 잘 구현되도록 형성되어야 합니다.
역사적으로 한 국가 내의 인권침해에 대한 가장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인권보호 수단으로 발전한 것이 헌법재판입니다.
사실 헌법과 국제인권규범에 부합하는지 유의해야 할 필요성은, 국제협약을 맺을 때가 국내 입법을 하는 경우보다 훨씬 더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국내법은 헌법재판으로 무효화할 수 있지만, 국제조약은 국내법상으로는 무효화하더라도 국제법적 효력은 바로 부인할 수 없어서 더 큰 문제가 됩니다.
따라서 외교에 종사하는 모든 분들이 조약, 행정협정 등을 검토할 때는 항상 국제인권규범과 헌법의 정신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입니다.
대한민국 헌법재판소는 그동안 한미상호방위조약에 의한 미군의 지위에 관한 협정이 국회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 조약으로 판단하고(1999. 4.), 한일어업협정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으며(2001. 3., 2009. 2.), 세계무역기구 설립을 위한 마라케쉬 협정은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지며 그에 따라 처벌이 가중되는 것이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1998. 11.)고 판단한 바 있습니다.
또한 일제강점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원폭 피해자의 권리구제를 위하여 외교적 노력을 하지 않는 행정부의 부작위는 기본권을 침해하는 위헌적인 것이라고 결정한 바 있습니다.
또 절차적으로는 국회의 비준동의를 받아야 하는 조약인지 여부에 대한 이견, 국회 비준동의 절차에서 국회의원의 심의표결권 침해 여부에 대한 여러 헌법재판 사건들이 있었습니다.
3. 다른 한편으로, 인권의 침해는 그 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 지역 및 국제평화에도 중대한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인식 속에 인권보호에 대한 국제적 연대가 강화되고 있는 것이 요즈음의 추세입니다.

그 중심에 50년 전인 1966년 12월 16일 국제연합 총회에서 문안이 채택되고 1976년 발효되었으며, 대한민국에 대하여는 1990년 7월 10일 발효한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 규약’이 있습니다.
많은 대한민국 헌법재판 사건에서 당사자들은 오늘 국제학술회의 주제인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 규약’을 비롯하여 세계인권선언의 내용, 국제노동기구의 여러 조약 등을 근거로, 우리 법령과 행정부의 행위의 위헌성을 주장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조약들은 헌법 제6조 제1항에 따라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부여받는 것이므로, 헌법과 동등한 지위의 규범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실질적으로 주요한 국제인권장전에 규정된 기본적 인권에 대한 내용들은, 헌법이 규정한 민주주의와 법치주의 가치, 기본권 보장의 정신과 맥과 결을 같이 합니다.
사실상 헌법 해석에 있어서 국제인권장전의 내용을 도외시할 수는 없습니다. 국제인권장전의 내용은 헌법이 규정한 기본권의 내용을 풍성하게 하고 보충합니다.
국제인권장전과 다른 방향으로 기본권의 한계와 제한을 판단할 때는, 그것이 왜 다른지에 대하여 정당화하는 사유를 설명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외국인 근로자의 노동권을 제한한 노동부 예규에 관한 사건에서, 헌법재판소는 근로기준법 제5조와 함께 '국제연합의 경제적·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제4조의 '동등한 가치의 노동에 대하여 동등한 근로조건을 향유할 권리'를 언급하면서, 이를 헌법의 해석에서 고려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결국 이러한 권리를 제한하기 위해서는 법률에 의하여야 하는데 이를 행정규칙에서 규정하고 있으므로 법률유보의 원칙에 위배된다며 예규가 위헌이라고 결정한 바 있습니다.
즉 국제권리장전 규범들은 국경선의 안과 밖을 불문하고 어느 곳에서든 보편적인 인권을 보장하는 기본 틀에 해당합니다.
4. 그런데 세계화된 시대에 한 국가의 사법기관만으로는 기본적 인권을 충실히 보장하는 데 불충분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국제적 연대의 필요성이 있습니다.
2차대전 이후 인권의식의 획기적인 진전의 결과로, 전 세계적 차원의 인권보호를 목표로 하는 UN을 중심으로 하는 국제인권협약 시스템이 있습니다.
그러나 국제관계에서 헌법의 이념과 기본권의 보장을 구체화하고 관철하는 것이 항상 쉽지는 않습니다.
국제인권기구 결정을 집행하는 것이 쉽지 않고, 국제법정이나 중재심판과 주권국가의 권한의 관계가 문제되기도 합니다. 보편적 국제인권규범에 대하여 자국의 특수성을 주장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나 어떠한 경우에도 국민, 나아가 세계인의 기본적 인권의 침해가 수인할 수 없을 정도로 과도하여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요즘 세계 곳곳에서 자국의 이익을 우선하고 나라 사이의 교류가 아닌 고립을 지향하는 흐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20세기의 역사에서 경험하였듯이, 그러한 흐름의 결과는 세계대전이었고 인류는 문명의 파괴와 인간성의 말살을 보았습니다.
그 반성 위에서 20세기 후반에 인류가 이룬 가장 뛰어난 업적이자 성취인 개방과 교류, 인권보장, 차별금지 등의 가치들이 집대성된 것이 바로 국제인권규범입니다.
오늘 지난 50년 동안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 규약의 성취와 한계를 돌아보고 앞으로 국제인권규범이 보편적인 강행규범으로 발전해 나갈 길을 모든 인류가 함께 찾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특히, 반인도적 인권침해와 같은 인류의 보편적 인권의 문제에 있어서는 국가라는 경계가 장애물이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반인도적 인권침해를 근절하고 예방할 근본적인 해결책을 국제사회가 마련함으로써, 반인도적 범죄행위로 인해 되풀이되는 비극을 막아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이는 인류 모두의 공동 과제라고 할 것입니다.
보편적인 인권을 보장하는 것이야말로 문명국가인지 여부를 판가름하는 기준이며, 인류공동체의 보편 문명이 나아갈 거스를 수 없는 방향인 것입니다.
5. 이와 더불어, 특정 지역을 중심으로 그 지역에 속한 나라들의 인권보장을 위해 공동 노력하는 지역인권보장 시스템이 마련되었습니다. 그 가장 모범적인 예가 유럽인권재판소를 비롯한 유럽의 지역인권보장 시스템입니다.
다자간 국제조약에 근거한 지역 인권보장기구는 인권 보장의 내용에 관해 지역 내 국가들 사이에서 구체적인 합의를 하고, 위반행위에 대한 조사·판단·집행 등에 관해서도 강제력 있는 합의에 따라 운영된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지역 국가들의 상호 감시 및 압박 등을 통해 지역 인권보장기구의 결정의 이행이 확보될 수 있으므로, 사회통합과 인권 보장의 실효성도 매우 높아지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지역의 특성을 반영한 지역적 인권보장체제는 유엔인권위원회나 유엔인권최고대표 등 보편적 인권보장시스템과 상호 보완적으로 기능할 수 있습니다.
지금 유럽 및 미주지역, 그리고 아프리카에는 유럽인권재판소(1959), 미주인권재판소(1979), 아프리카 인권재판소(2006) 등 지역적 인권보장기구가 운용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강제력을 가지는 국제규범을 기본으로 하고 있으며 위반 시에는 그에 상응한 법적 책임을 지게 됩니다.
지역적 인권보장기구는 각국의 헌법재판기관과의 끊임없는 대화를 통하여 지역 전체의 인권 수준을 향상시키고 인권과 민주주의, 법치주의에 대한 공감대를 확산시켜 나갈 수 있습니다.
6. 그러나 아쉽게도 세계 인구의 60%가 살고 있는 아시아에만 유일하게 지역 차원의 인권재판소가 없습니다. 아시아 지역의 녹록치 않은 여러 인권상황과 아직까지도 과거 인권침해에 대한 사과와 반성이 미진한 아시아의 비극적 역사를 고려한다면, 이는 너무나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아시아 인권기구는 아시아인의 헌법상 권리들의 증진과 보장을 통하여, 일본군 위안부 사건과 같은 인권 유린행위가 앞으로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는 실질적이고도 절실한 인권보장방안입니다.
나아가 이는 미래지향적으로 보편적 인권 보장이라는 공통의 주제 아래 아시아 지역의 평화와 결속을 이루는 기반입니다.
그래서 저는 아시아에도 지역적 인권보장기구로서 인권재판소가 반드시 필요하고 설립되어야 한다는 제안을 그동안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해 왔습니다.
2014년 서울에서 개최된 세계헌법재판회의 제3차 총회에서 채택된 ‘서울 코뮤니케’를 통해, 세계 헌법재판기관들은 대한민국 헌법재판소가 제안한 아시아 인권재판소 설립에 대하여 보편적 지지와 공감을 표시한 바 있습니다.
7. 마침 아시아에는 한국 헌법재판소의 주도로 2010. 7. 자카르타 선언을 통하여 아시아헌법재판소연합(이하, AACC)이 창설되었고, 2012. 5. 대한민국 서울에서 AACC 창립총회가 개최되었습니다.
처음 7개국으로 출발하였던 AACC는 지금 16개국에 이르고 있으며, AACC를 통하여 아시아 국가들 사이에도 개인의 불가침의 인권을 보장하여야 한다는 보편적인 합의가 이미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연합체는 아직 구속력 있는 지역적 인권보장기구로 발전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난 8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AACC 제3차총회에서, 대한민국 헌법재판소는 AACC 상설 연구사무국을 유치하였습니다.
이를 통하여 아시아 지역의 보편적 인권보장과 평화 보장을 위한 심층적 연구와 국제협력을 대한민국이 주도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를 마련하였습니다.
우리 헌법재판소에서는 내년 1월 AACC 상설사무국을 출범시키고, 회원국의 헌법재판관, 대법관들을 비롯한 여러 인사들을 초청하여 현안에 대하여 실질적인 답을 제시할 수 있는 국제 심포지엄을 진행하려고 합니다.
AACC 상설사무국의 본격적인 연구활동은 앞으로 아시아 인권기구 설립의 기초가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저는 그동안 아시아 인권보장기구의 신속한 설립을 위하여, 처음에는 아시아 인권재판소의 관할과 청구방식을 제한적으로 설정하고, 점차 확대해 나가는 방안을 작년 11월 독일 프라이부르크대학교 특별강연과 금년 5월 러시아 헌법재판소 창립 25주년 국제회의에서 구체적으로 제시한 바 있습니다.
먼저 집단 살상의 금지, 여성에 대한 폭력 금지, 아동 보호 등 심각한 인권침해에 국한한 좁은 범위의 관할권을 가진 아시아 인권보장기구를 발족시킨 다음, 이후 점진적으로 더 포괄적인 아시아 인권헌장을 마련하여 관할권을 넓혀 나가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8. 아시아 인권보장기구가 설립되려면 조약의 체결·비준 권한을 가진 각국 정부의 강력한 의지가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앞으로 그 주무부서인 외교부와 법무부가 이에 대한 문제의식과 추진력을 가지고 주도적으로 이끌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국립외교원에서 양성되고 있는 장래의 외교관들이 국제인권규범의 가치와 중요성, 아시아 지역의 인권보장기구의 필요성을 오늘과 같은 학술회의를 통하여 깊이 인식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국제학술회의는 개별국가의 헌법질서와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 규약’을 비롯한 보편적인 국제인권장전 사이의 관계와 발전방향에 대한 경험과 지혜를 나누고 의견을 국제적으로 교환하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오늘 학술회의에서 아시아 인권보장기구의 설립 방안을 여러 아시아 국가의 입장에서 구체적으로 모색하여 봄으로써, 아시아 인권보장기구에 대한 광범위한 공감대의 확산과 더욱 밀도 있는 후속 연구를 위한 토대가 마련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끝으로 1963년 출범 이래 대한민국의 외교관을 양성하고 교육해 온 국립외교원의 더욱 큰 발전을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2016년 11월 24일
헌법재판소장 박 한 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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