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대 로스쿨 강연 자료(영문)-2013.10.29..doc
여성 인권 침해 회복을 위한 국가의 의무
-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구제를 위한 한국 정부의 의무에 관한 한국 헌법재판소 결정을 중심으로
제1장 서
1. 헌법재판의 의의
일반적으로 헌법재판이라 함은, 헌법규범을 기준으로 헌법분쟁 또는 헌법침해의 문제를 유권적으로 결정함으로써 헌법질서를 유지하고 헌법을 실현하는 국가작용을 일컫는다.
오늘날 자유민주국가에서 헌법재판제도는 국민의 기본권을 국가권력의 남용으로부터 보호하고, 정치권력을 헌법의 틀 안에서 작용하게 만듦으로써 헌법을 보호하고 헌법을 실현하는 중요한 수단이다. 특히 헌법재판제도는 기본권에 의하여 국가권력을 기속하고 국가권력의 행사에 있어서 절차적 정당성을 보장하는 장치로서 권력분립의 차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2. 한국의 헌법재판
연방대법원이 헌법재판을 하는 미국과는 달리, 한국은 일반법원과는 별도로 헌법재판소를 독립하여 설치하여 헌법적 사항만을 집중적으로 판단하고 있다.
한국 헌법재판소는 미국의 법원과 같이 재판에 적용되는 법률의 위헌 여부를 심사하고, 그 외에 탄핵 심판, 정당해산 심판, 국가기관과 지방자치단체 사이의 권한쟁의 심판을 심리한다.
또한 공권력의 행사 또는 불행사로 인하여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을 침해받은 자는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할 수 있는바(헌재법 §68①), 이 때 공권력은 입법권·행정권·사법권을 행사하는 모든 국가기관·공공단체 등의 고권적 작용을 말한다. 헌법소원제도는 공권력의 남용으로부터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하는 헌법재판제도이기 때문에 통치권의 기본권기속성을 실현시킬 수 있는 가장 실효성 있는 권력통제장치에 속한다.
이처럼 재판이 전제되지 않은 경우에도 헌법 위반 여부를 심사할 수 있다는 점이 한국과 미국의 헌법심사의 가장 큰 차이 중의 하나이다.
3. 결정의 소개
한국 헌법재판소가 하는 공권력의 불행사로 인하여 기본권을 침해받은 국민의 권리구제를 위한 헌법소원을, 사례를 바탕으로 소개하고자 한다.
오늘 소개할 사안은 2011. 8. 30. 한국 헌법재판소가 선고한 ‘대한민국과 일본 사이의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 등에 관한 협정 제3조의 절차에 따른 부작위 위헌확인’ 사건(2006헌마788)이다.
그 요지는 2차 대전 당시 일본군에 끌려간 위안부 피해여성이 일본정부에 대해 가지는 배상청구권이 대한민국과 일본 사이에 맺은 협정으로 소멸되었는지 여부에 대한 분쟁을, 협정이 정한 절차에 따라 한국정부가 해결하지 않고 있는 부작위가 위헌이라는 취지이다.
그 실질적 배경에는 일본정부와 군에 의하여 강제로 동원되어 성노예 생활을 강요당한 피해 여성들에 대한 포괄적인 일본의 국가책임 문제가 있지만, 이 사건에서 한국 헌법재판소가 심리한 대상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가 일본에 대한 배상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할 국가의 의무를 한국정부가 이행하였는지 여부이다.
이 결정은 전시에 한 국가가 다른 나라의 여성에 대하여 조직적으로 저지른 성범죄로 인한 여성의 인권 침해의 구제라는 중대한 문제에 관한 국제규범을 정립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제2장 배경이 되는 사실관계
1. 일본군의 위안부 강제 동원
(1) 1932년 상해사변시 구 일본군 병사에 의해 강간사건이 다발하면서 현지인들의 반발과 성병 등의 문제로 이어지자 그 방지책으로서 일본해군이 최초로 일본군 위안소를 설치하였다. 일본군은 1937년 7월부터 중일전쟁으로 병력을 중국으로 다수 송출하면서 점령지에 군위안소를 설치했는데, 1937년 12월 남경대학살 이후 그 수가 증가되었다. 이는 피식민국가 여성들을 군의 성노예로 삼아 군인들에게 ‘정신적 위안’을 제공함으로써 언제 끝날지 모르는 전쟁에서 이탈하려는 군인들의 사기를 진작시키고 불만을 완화하기 위한 것이었다.
1941년부터 2차대전 중 일본군은 동남아시아, 태평양지역의 점령지역에서도 군위안소를 설치했다. 조선, 중국, 홍콩, 마카오, 필리핀 등 일본이 침략한 지역에 일본군 위안소가 설치된 것이 공문서에 의해 확인된다. 일본군 위안부의 수는 8만에서 20만명 정도로 추정되고 있으며, 그 중 80%는 조선(대한민국 및 북한) 여성들이었고, 그 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국적은 필리핀, 중국, 대만, 네덜란드 등이다.
(2)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은 사기, 협박, 납치 등의 방법을 통하여 전선으로 끌려가, 전혀 자기 통제력을 갖지 못한 채 발가벗겨진 채로 누워서 끊임없이 밀려드는 일본군들을 상대해야 했으며, 일본 군인들의 일방적인 성적 요구에 쉽게 응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수시로 구타 및 칼질을 당하는 등 인간 이하의 생활을 하였다. 이들은 성병, 정신질환 등에 시달렸고, 강제로 불임수술을 당한 경우도 있으며, 군사기밀 누설을 막는다는 이유로 병에 걸려도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피해자들 대부분이 전쟁 중 전장에서 희생되었고, 일부 귀환자들도 대부분 후유증으로 일찍 사망하였으며, 생존한 사람들은 가족, 사회와 절연된 채 자포자기식의 삶을 이어왔다.
이에 대하여, 힐러리 클린턴 전 미국 국무장관은 ‘위안부’라는 표현은 틀린 것이고, ‘강제된 성노예’라는 표현이 맞는다고 한 바 있다.
(3) 1993년 8월 4일 고노 요헤이 일본 관방장관은 ‘이른바 종군위안부 문제에 관하여’라는 보고서를 발표하였다. 이 담화는 “위안소는 당시 군 당국의 요청에 의해 만든 것이며, 위안소의 설치, 관리 및 위안부의 이송에 관해서는 옛 일본군이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이에 관여했다”고 밝혔다. 또 위안부 모집도 “감언·강압에 의하는 등 본인들의 의사에 반해 모집된 사례가 많이 있으며, 관헌 등이 직접 이에 가담했다”고 밝히고 “(일본 정부는) 이른바 종군위안부로서 허다한 고통을 경험하고, 심신에 걸쳐 씻기 어려운 상처를 입은 모든 분들께 사과와 반성의 마음을 올린다”고 표명했다.
위안부 동원에 일본군이 개입된 사실과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하고 사죄한 이 ‘고노 담화’를 통하여, 일본 정부는 일본군의 위안부 강제동원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였다.
하지만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현재까지 이제는 고령이 된 위안부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일본 정부의 배상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오히려 현재 일본 정부 내에서 여러 증거로 확인된 사실에도 불구하고 위안부 강제동원 사실을 부인하고, 고노담화를 수정하자고 주장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2. 대한민국과 일본 사이의 청구권 협정 체결 및 경과
(1) 2차대전이 끝난 후 1951. 9. 8. 샌프란시스코에서 체결된 연합국과 일본과의 평화조약 제4조 a항은 일본의 통치로부터 이탈된 지역의 시정 당국 및 주민과 일본 및 일본 국민 간의 재산상 채권·채무관계는 이러한 당국과 일본 간의 특별약정으로써 처리한다고 규정하였다.
(2) 위 조약 제4조 a항의 취지에 따라 대한민국 및 대한민국 국민과 일본 및 일본 국민 간의 재산상 채권·채무관계를 해결하기 위한 협의가 1952. 2. 15.부터 열렸다. 한국 정부는 한국에서 일본이 반출한 미술품 등의 반환, “한국인의 일본 및 일본국민에 대한 일본국채, 공채, 일본은행권, 피징용 한국인의 미수금, 그 외 한국인의 청구권 변제” 등 8개 항목을 청구하였다. 일본 정부는 개인의 피해에 대한 보상을 하는 것에 반대하여 협상은 난항을 겪었다.
(3) 협상 결과 최종적으로 1965. 6. 22. 구체적인 명목을 표시하지 않고 일본이 일정한 금액을 무상 및 차관으로 대한민국에 지불하되, ‘양국 및 그 국민의 재산, 권리 및 이익과 청구권에 관한 문제를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대한민국과 일본 사이의 청구권 협정이 체결되었다.
(4) 위 협정 제2조 제3항은 양국 국민이 가지는 상대국 및 상대국가 국민에 대한 청구권 주장을 할 수 없다고 규정하였다. 협정 제3조에서는 협정의 해석 및 실시에 관한 분쟁을 우선 외교상 경로를 통해 해결하고, 해결되지 않으면 중재위원회를 구성하여 그 결정에 따른다고 규정하였다.
(5) 대한민국 정부는 입법을 통하여 일본으로부터 받은 무상자금을 민간보상신청을 받아 지급하였는데, 그 대상은 일제에 의해 강제로 징용·징병된 사람 중 사망자와 위 ‘회담 과정에서 대일 민간청구권자로 논의되어 알려졌던’ 민사채권 또는 은행예금채권 등을 가지고 있는 민사청구권 보유자에 한정되었다.
(6) 이처럼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이 사건 협정체결을 위한 한·일 회담이 진행되는 동안 전혀 논의되지 않았고, 한국 측이 작성한 8개 항목 청구권에도 포함되지 않았으며, 이 사건 협정 체결 후 입법조치에 의한 한국 정부의 보상대상에도 포함되지 않았다.
3.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제기와 진행
(1) 이처럼 전혀 논의되지 못했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는 1990년대 들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공개기자회견을 통하여 본격적으로 제기되기 시작하였다.
(2) 일본 정부는 초기에 책임을 완전히 부인하면서 일본군 위안부가 민간업자가 군을 따라다니며 데리고 다닌 ‘매춘부’라고 시사하였으나, 1992. 1. 일본방위청 방위연구소 도서관에서 일본군이 군위안부 징집에 직접 관여한 사실에 관한 공문서 6점이 발견되면서, 그 입장을 대폭 수정하게 되었다.
피해자의 출현과 관련 자료의 발굴 및 안팎의 여론에 밀려 진상 조사에 착수한 일본 정부는, 1993. 8. 4. 일본군 및 관헌의 관여와 징집·사역에서의 강제를 인정하고, 문제의 본질이 중대한 인권 침해였음을 승인하며 사죄하는 내용의 고노 관방장관의 담화를 발표하였다.
(3) 하지만 일본 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보상은 이 사건 청구권 협정으로 이미 모두 해결된 상태라서 새롭게 법적 조치를 취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면서, 1994. 8. 31. 군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와 존엄 훼손에 대한 도의적인 책임으로 인도적 견지에서 개별적인 위로금이나 정착금을 지급할 수 있고 정부 차원이 아닌 ‘민간 차원’에서 아시아여성발전기금의 조성 등을 모색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4) 한국, 대만 등지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과 지원단체들은 아시아여성발전기금의 본질이 일본 정부의 책임회피라고 판단하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정당한 배상의 대상이 아닌 인도주의적 자선사업의 대상으로 보는 기금에 반대 입장을 표명하였다.
(5) 한국 정부는 법률을 제정하여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생활지원금을 지급하고, 아시아여성발전기금이 지급하려고 한 4,300만원을 피해자들에게 지급하였다.
(6) 한국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은 1991년부터 여러 차례 일본을 상대로 배상을 청구하였으나, 일본 최고재판소는 이를 모두 기각하였다. 소송과정에서 항소심인 도쿄고등재판소는 원고들이 안전배려의무 및 불법행위에 근거한 손해배상채권을 취득하였을 가능성이 있으나, 이 사건 협정 제2조 제3항의 재산, 권리 및 이익에 해당하여 모두 소멸하였다고 판시하였다. 중국, 대만 등 국적의 위안부 피해자들이 제기한 소송도 모두 일본 법원에서 기각되었다.
4. 국제사회의 평가
국제사회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국가에 의한 여성인권의 중대한 침해이며, 일본의 사죄와 기록공개,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 등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표명하고 있다.
(1) 유엔 인권소위원회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1996. 1. 4.자 ‘쿠마라스와미 보고서’에서, 2차 대전 때 강제연행된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일본의 인권침해는 명백히 국제법 위반이라는 점을 확인하고, 일본에 대하여 국가차원의 손해배상, 책임자 처벌, 정부가 보관하고 있는 모든 자료의 공개, 서면을 통한 공식사죄, 교과서 개정 등을 권고하는 6개 항의 권고안을 제시하였다.
1996. 4. 19. 제52차 유엔 인권위원회는 위 보고서를 채택하는 결의를 하였다.
(2) 1998. 8. 12. 유엔 인권소위원회(차별방지 소수자 보호 소위원회)에서는, 일본 정부의 법적 배상책임, 책임자 처벌을 골자로 하는 특별보고관 게이 맥두걸의 보고서가 발표되어 채택되었다. ‘맥두걸 보고서’에서는 ① 위안부제도가 성노예제라는 것을 분명히 하고, 위안소를 강간센터(rape center, rape camp)로 규정하여 강제성을 부각하였고, ② 일본의 책임자 처벌문제를 강조하면서 생존 전범의 색출을 주장하였으며, ③ 유엔사무총장은 일본 정부로부터 최소한 연 2회 이상 진행사항을 보고받고, 유엔 인권위원회 고등판무관은 일본 정부와 협력하여 책임자의 처벌 및 적절한 배상을 위한 패널을 구성하는 등 유엔의 적극적인 개입을 요구하였고, ④ 생존자들이 고령인 점을 고려하여 긴급하고 신속하게 일본 정부의 배상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이 강조되었다.
(3) 이후 일본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교과서에서 삭제하고 일본의 국가책임을 인정한 고노 담화마저 수정하려는 움직임이 일자, 개별국가에서도 이에 대하여 단호하게 대처하기 시작하였다.
(4) 미국 연방하원은 2007. 7. 30. 만장일치로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을 채택하였다. 그 주요내용은 ① 일본 정부는 1930년대부터 제2차 세계대전 종전에 이르기까지 아시아 국가들과 태평양 제도를 식민지화하거나 전시에 점령하는 과정에서 일본 제국주의 군대가 강제로 젊은 여성들을 위안부로 알려진 성노예로 만든 사실을 확실하고 분명한 태도로 공식 인정하면서 사과하고 역사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 ② 일본 정부는 일본군들이 위안부를 성노예로 삼고 인신매매를 한 사실이 없다는 어떠한 주장에 대해서도 분명하고 공개적으로 반박하여야 한다. ③ 일본 정부는 국제사회가 제시한 위안부 권고에 따라 현 세대와 미래세대를 대상으로 끔찍한 범죄에 대한 교육을 해야 한다는 것 등이다.
(5) 네덜란드 하원(2007. 11. 8.), 캐나다 연방의회 하원(2007. 11. 28.), 유럽의회(2007. 12. 13.)도 20만 명 이상의 여성들을 위안부로 강제동원해 저지른 만행에 대한 일본 정부의 공식사과와 역사적·법적 책임의 인정,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 위안부 강제동원 사실을 현재와 미래의 세대들에게 교육시킬 것 등을 포함한 결의안을 채택하였다.
(6) 유엔인권이사회는 2008. 6. 12. 일본 인권상황 정기검토를 통해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각국의 권고와 질의를 담은 실무그룹보고서를 정식으로 채택하였다.
유엔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B규약)” 인권위원회는 2008. 10. 30. 일본의 인권과 관련된 심사보고서를 발표하고, 일본 정부에 대해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법적 책임을 인정하고 피해자 다수가 수용할 수 있는 형태로 사죄할 것을 권고했다.
(7) 한편 대한변호사협회와 일본변호사협회는 2010. 12. 11.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하여 ① 이 사건 협정의 완전 최종 해결 조항의 내용과 범위에 관한 양국 정부의 일관성 없는 해석ㆍ대응이 피해자들의 정당한 권리 구제를 방해하고 피해자들의 불신감을 조장해 왔다는 것을 확인하고, ② 사죄 및 금전보상을 포함한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위한 입법이 일본 정부 및 국회에 의해 신속하게 이루어져야 함을 확인하는 내용의 공동성명을 발표하였다. 성명은 한 사람의 피해자라도 더 살아 있을 때 일본 정부가 입법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것을 촉구하고, 한국 정부도 더 적극적인 외교정책을 취할 것 등을 요구하였다.
(8) 국제사회가 일본정부의 소극적인 태도를 정면으로 비판하는 이유는, 드러난 가해의 성격과 규모 및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피해의 지속성에 비추어 볼 때, 모성의 원천인 여성을 군대의 성노예로 만드는 범죄야말로 인류가 도저히 용납해서는 안 되는 극악한 범죄임을 일본과 세계시민에게 뚜렷하게 각성시키기 위한 것이다.
제3장 정부의 부작위가 위헌인지 여부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판단
1. 한국과 일본 정부의 협정의 해석에 관한 분쟁과 해결절차
(1) 한국 정부는 2005. 8. 26. 이 사건 협정은 샌프란시스코 조약 제4조에 근거하여 한·일 양국 간의 재정적·민사적 채권·채무관계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과 같이 일본 정부 등 국가권력이 관여한 ‘반인도적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이 사건 협정에 의하여 해결된 것으로 볼 수 없으므로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이 인정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2) 그러나 일본 정부는 ① 고노 담화를 통한 사과, ② 이 사건 협정을 통한 법적 문제의 해결, ③ 아시아여성기금의 활동 등을 통해 일본군 위안부 관련 문제가 완결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나아가 최근 일본 아베 정부에서는 여러 증거로 확인된 사실에도 불구하고 위안부 강제동원 사실을 부인하고, 고노담화를 수정하자고 주장하는 발언들이 나오고 있다.)
(3) 따라서 이 사건 협정 제2조 제1항의 대일청구권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배상청구권이 포함되는지 여부에 관한 한·일 양국 간에 해석 차이가 존재하고, 그것은 협정 제3조의 ‘분쟁’에 해당한다.
(4) 협정 제3조 제1항은 ‘본 협정의 해석 및 실시에 관한 양 체약국의 분쟁은 우선 외교적인 경로를 통하여 해결한다’고 규정하고, 제2항은 제1항의 규정에 의하여 해결할 수 없는 분쟁은 중재에 의하여 해결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므로 대한민국은 위 분쟁이 발생한 이상, 협정 제3조에 의한 분쟁해결절차에 따라 외교적 경로를 통하여 해결하여야 하고, 그러한 해결의 노력이 소진된 경우 이를 중재에 회부하여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이러한 분쟁해결절차로 나아가지 않은 ‘한국 정부’의 부작위가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기본권을 침해하여 위헌인지 여부가 이 사건의 심판대상이다.
2. 한국 정부의 부작위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기본권을 침해하는지 여부(6인 재판관 다수의견)
(1) 국가의 기본권 보호의무
한국 헌법 제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인간의 존엄성은 최고의 헌법적 가치이자 국가목표규범으로서 모든 국가기관을 구속하며, 국가는 인간존엄성을 실현해야 할 의무와 과제가 있다. 따라서 인간의 존엄성은 ‘국가권력의 한계’로서 국가에 의한 침해로부터 보호받을 개인의 방어권일 뿐 아니라, ‘국가권력의 과제’로서 국민이 제3자에 의하여 인간존엄성을 위협받을 때 국가는 이를 보호할 의무를 부담한다.
일제강점기에 일본군 위안부로 강제 동원되어 인간의 존엄과 가치가 말살된 상태에서 장기간 비극적인 삶을 영위하였던 피해자들의 훼손된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회복시켜야 할 의무는, 국가가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보호하기 위하여 부담하는 가장 근본적인 보호의무에 속한다.
(2) 국가의 작위의무
따라서 국가가 협정 제3조에 따라 분쟁해결의 절차로 나아갈 의무는, 일본에 의해 자행된 조직적이고 지속적인 불법행위에 의하여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당한 국민들이 배상청구권을 실현할 수 있도록 협력하고 보호하여야 할 헌법적 요청에 의한 것이다. 국가의 의무 이행이 없으면 청구인들의 기본권이 중대하게 침해될 가능성이 있으므로, 이는 헌법에서 유래하며 법령에 구체적으로 규정되어 있는 작위의무이다.
특히 ‘모든 청구권’이라는 포괄적인 개념을 사용한 협정을 체결한 책임이 있는 한국 정부는 피해자들의 일본에 대한 배상청구권의 실현 및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의 회복을 하는 과정의 장애상태를 제거할 구체적 작위의무가 있다.
(3) 부작위로 침해되는 기본권의 중대성
일본군 위안부 피해는, 일본 국가와 일본군에 의해 강제로 동원되고 그 감시 아래 일본군의 성노예를 강요당한 것에 기인하는 것으로, 달리 그 예를 발견할 수 없는 근원적인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에 대한 특수한 피해이다.
1994. 9. 2. 발표된 유엔의 NGO 국제법률가위원회의 보고서와 1996. 2. 6. 공표된 유엔 인권위원회 ‘여성에 대한 폭력 특별보고자’ 쿠마라스와미의 보고서는 이를 “군사적 성노예”라고 정의했고, 1998. 8. 12. 공표된 유엔 인권소위 ‘전시 성노예제 특별보고자’ 게이 맥두걸의 보고서는, ‘인도에 대한 죄’에 해당하는 범죄행위라고 단언했다.
2007. 7. 미국 연방하원이 채택한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도 일본군 위안부를 “일본 정부에 의한 강제 군대 매춘제도이자 잔학성과 규모면에서 20세기 최대의 인신매매 범죄”로 규정하였다. 1998. 4. 27.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한 입법부작위책임을 인정하여 손해배상을 명한 일본의 하급심 판결은, 그 피해를 “철저한 여성차별·민족차별사상의 표현이며, 여성의 인격의 존엄을 근저에서부터 침해하고, 민족의 긍지를 유린하는 것”이라고 판단하였다.
일본에 의하여 광범위하게 자행된 반인도적 범죄행위에 대하여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에 대하여 가지는 배상청구권의 실현은, 무자비하게 지속적으로 침해된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신체의 자유를 사후적으로 회복하는 의미를 가진다.
따라서 그 배상청구권의 실현을 가로막는 부작위는 재산권 문제에 국한되지 않고 근원적인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의 침해와 직접 관련된다.
(4) 기본권 침해 구제의 절박성
일본 법원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사법적으로 구제하거나, 일본 정부의 자발적 사죄 및 구제조치를 기대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일본에 의하여 피해자들이 군대 성노예로 내몰렸던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도 60여년이 훨씬 넘었고, 피해자들이 일본을 상대로 소송을 시작한지도 20년 남짓 흘렀다. 현재 생존해 있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은 모두 고령이어서,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경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배상청구권을 실현함으로써 역사적 정의를 바로세우고 침해된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회복하는 것은 영원히 불가능해지는 상황이다. 따라서 한국 정부가 청구인들의 기본권 침해를 구제하도록 노력할 절박성이 있다.
(5) 기본권의 구제가능성
협정의 체결 경위 및 그 전후의 상황, 여성들에 대한 유례 없는 인권침해에 경악하면서 일본에 대하여 공식적 사실인정과 사죄, 배상을 촉구하고 있는 일련의 국내외 움직임을 종합해 볼 때, 한국 정부가 협정 제3조에 따라 분쟁해결절차로 나아갈 경우 일본에 의한 배상이 이루어질 가능성을 미리 배제할 수는 없다.
(6) 결론
그렇다면, 협정 제3조에 따라 분쟁해결의 절차로 나아갈 의무는 헌법에서 유래하고 법령에 구체적으로 규정되어 있는 작위의무이고, 청구인들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재산권 등 기본권의 중대한 침해가능성, 구제의 절박성과 가능성 등을 널리 고려할 때, 한국 정부가 협정에 규정된 분쟁해결 절차로 나아갈 작위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부작위는 헌법에 위반하여 청구인들의 기본권을 침해한다.
3. 재판관 3인의 반대의견
협정 제3조의 ‘외교적 해결의무’의 이행은 사법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객관적 판단기준을 마련하기 힘든 고도의 정치행위 영역으로서, 헌법재판소의 사법심사의 대상은 되지만 사법자제가 요구되는 분야이다. 헌법재판소가 정부에 막연히 ‘외교적 노력을 하라’는 의무를 강제로 부과시키는 것은 헌법이 외교행위에 관한 정책판단, 정책수립 및 집행에 관한 권한을 행정부에 부여하고 있는 권력분립원칙에 반할 소지가 있다.
일본에 의하여 강제로 위안부로 동원된 후 인간의 존엄과 가치마저 송두리째 박탈당한 청구인들의 기본권을 구제할 절박한 상황을 생각하면 어떠한 방법으로든 국가적 노력을 다해야 할 것이나, 한국 정부에게 외교적 문제해결을 강제할 수는 없다. 이는 권력분립의 원칙상 헌법재판소가 지켜야 하는 헌법적 한계이다.
4. 후속 경과
한국 외교부는 헌법재판소의 이 사건 결정이 있은 뒤 이 사건의 ‘분쟁해결을 위한 양자 협의’를 갖자는 외교문서를 2차례 보냈지만, 문제 해결을 위한 일본측의 실질적인 답은 없는 상태이다. 한국 정부는 현재 협정에 규정된 중재위원회 설치 제안을 할 것인지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2013. 10. 현재 생존한 한국인 위안부 피해자는 56명이며, 모두 고령이다. 일본의 신속한 피해의 배상과 진솔한 사죄가 요청되는 이유이다.
제4장 평가
1. 결정의 의의
(1) 법치국가는 인권이 침해된 개인이 사법적 구제받을 수 있는 조치를 마련하여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헌법상의 인권은 문언상으로만 존재하게 되며 그 규범력을 가질 수 없다.
한국 헌법재판소의 이 결정은, 기본권 침해의 특수성과 역사적 중요성에 주목하여,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대일본 배상청구권 문제를 방치하고 있는 국가공권력의 부작위가 위헌이라는 점을 확인하였다.
이 결정은 국가권력에 의한 여성의 인간의 존엄과 가치 침해가 구제되어야만 한다는 점에서, 인간이 가지는 보편적 인권을 보장되어야 한다는 국제규범을 확인하였다.
또한 국가는 기본적 인권을 침해받은 국민을 보호하고 권리구제를 도모하여야 하는 것이지, 인권침해를 당한 국민의 청구권 행사를 임의로 방기하여도 되는 재량이 있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이는 개인의 기본적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국제인권법의 준수와 강제의 측면에서도 의미 있는 선례가 될 것이다. 국제법은 이제 개인은 단순히 법적용의 대상에 불과하다는 17세기의 국제법이 아니라, 개인을 중시하는 내용으로 발전하여 왔다.
(2) 이 결정은 인류의 보편적 인권보장과 인권인식의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 전시 상황에서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한 침해는 보스니아 내전 등에서 볼 수 있듯이 현재도 세계 여러 분쟁지역에서 계속되고 있는 문제이다. 이것이 반복되도록 방치하는 것은 수세기 동안 인권신장을 위해 노력해 온 21세기의 인류공동체와 문명국가의 기준에서 용납될 수 없다.
한국 헌법재판소의 이 결정은 인류의 보편적 인권의식의 발전을 확인하는 의미를 가진다. 이 결정은 반인도적 인권침해에 대하여 인류는 끝까지 추적하여 사죄와 반성을 요구할 것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으며, 특히 대표적 성노예 사건으로 반인도적 인권침해인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세계에 알려 더 이상 국가에 의한 이러한 인권유린이 어떠한 경우에도 되풀이되지 않도록 본보기를 보이는 역할을 한다. 인권규범이 국제법상 강행규범으로 고양되는 것을 보이는 상징적인 판결이라고 할 수 있다.
(3) 일본군 성노예 문제 해결을 위한 역사적인 노력은 한국, 일본, 미국, 유엔 등을 포함한 사회 일반을 변화시키고, 여성의 권리신장에 있어서 국제인권발전사에 있어서 역사적인 공헌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수십 년간 잊혀져왔던 2차 대전 중 인권침해 전반을 되돌아보는 기회가 되었고, 유엔 등에서 전시 여성 폭력을 심각하게 살펴보는 전기를 마련하였다. 이는 1998년 채택된 ‘국제형사재판소에 관한 로마협약’에 반영되었고, 국제노동기구(ILO)에서도 군대 성노예제가 주요 의제가 되었다.
(4) 참고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한 일본의 국제법상 책임론의 내용을 간략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① 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소 조례(1945. 8. 8.) 제5조 등에 규정된 ‘인도에 반하는 범죄’에 대한 위반행위이다.
‘인도에 반하는 범죄’란 ‘전쟁 전 또는 전쟁 중 민간인에 대한 살해, 절멸, 노예적 혹사, 추방, 기타의 비인도적 행위 또는 범행지의 국내법 위반행위이든 아니든 위 재판소의 관할권 내에 있는 어떤 범죄의 수행으로서 행했거나, 그와 관련하여 행해진 정치적·인종적 또는 정치적 이유에 근거한 박해행위’이다.
② 인권과 기본적 자유에 대한 중대한 침해행위로서 제네바 국제인도법(1949. 8. 12.) 위반행위이다.
③ 일본이 1932년에 비준한 ILO협약 제29호(강제노동규약, 1930. 6. 28.)을 위반한 성노예에 해당한다. 특히 1996. 2. 29. ILO 기준 적용위원회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당시 일본군 위안부는 성적 노예로 강제노동을 금지하고 있는 ILO협약 제29호 위반에 해당하고, 일본정부는 임금지급 등 피해여성들의 보상을 민간차원이 아닌 정부차원에서 하여야 한다’는 의견서를 제출하였다.
④ 육전의 법규 및 관례에 관한 협약(1907)에서 정하고 있는 ‘인도의 법칙 및 공서양속의 요구’에 위반되고, 국제관습법인 ‘노예로부터의 자유(Freedom from Slavery)’의 침해행위에 해당된다.
⑤ 한편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일본의 국제법상 책임은 공소시효의 적용이 없다. 특히 1968년 유엔결의 제2391호에서는 전쟁범죄 및 인도에 반한 죄에 대해서는 시효가 적용되지 않음을 확인한 바 있다.
2. 비교 사례
(1) 일본과 달리 독일은 2차 대전 당시 나치 정권이 한 인권 침해에 대해서 책임을 인정하고 사죄하고 금전적인 배상을 하는 태도를 분명히 하였다.
1970년 12월 7일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가 폴란드 바르샤바의 유대인 희생자 추모비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무릎을 꿇은 장면이 이를 상징하며, 2013년 8월 20일에도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최초의 나치 강제수용소였던 뮌헨 인근 다하우 추모관에서 나치 범죄의 책임을 반성하였다. 이를 통해 독일은 피해자와 인근 국가를 비롯한 세계의 마음을 열었고, 존경받는 국제사회의 일원이 될 수 있었으며, 이는 유럽연합으로 이어지는 지역 평화협력의 밑바탕이 되었다.
(2) 이 사건 협정의 개정 등에 관한 주목할 만한 국제 선례로, ‘독일 프랑스 사이 포괄보상협정’ 체결 이후 프랑스에서 국내사정의 변경을 이유로 독일에 추가보상을 요구한 예가 있다. 독일과 프랑스는 1960. 7. 15. ‘독불간 나치피해 박해조치로 피해를 입은 프랑스 국민을 위한 지불에 관한 조약’을 체결하고 4억마르크를 지급했고, 위 조약 3조에서도 나치박해로 자유 또는 신체상의 피해를 입은 프랑스인 또는 그 유족에 대한 모든 청구권이 완결된다는 규정을 두었다. 그럼에도 프랑스는 독일에 ‘강제징집자’ 등에 대한 추가보상을 요구하였고, 독일은 이를 받아들였다.
2000. 7. 6. 독일 하원은 다시 독일정부와 기업이 공동으로 100억마르크(5조4천억원)의 기금 (독일의 ‘기억, 책임 그리고 미래’ 기금)을 조성하여 2차대전 때 독일에 강제징용된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보상을 하도록 하는 법률을 통과시켰다. 이 기금은 강제징용되었던 외국인 노동자들의 희생에 의해 정부와 기업이 모두 이득을 본 것이므로 양측에 절반씩 부담을 지도록 하여 조성된 것으로서, 강제노역 피해자 20만명에게 1인당 평균 1만5,000마르크의 보상금이 지급될 수 있었다.
1999년 독일연방헌법재판소 결정(BVerfG, Beschluss v. 13. 5. 1996, 2BvL33/93)에서는 그 이유에서, 강제노동에 대한 손해배상과 관련해서 국가가 한 국제법상의 포기선언이 개인의 청구권 행사를 막거나 없앨 수는 없다고 설시한 바 있다.
(3) 미국도 소위 고문희생자 보호법(Torture Victim Protection Act)의 적용을 통하여 외국에서 외국인간에 발생한 인권침해행위에 대하여서도 관할권인정은 물론 막대한 액수의 손해배상을 명하여오고 있다.
외국인 불법행위 구제법(Alien Tort Statute, 28 U.S.C. 1350, (2000))은 미국이 체결한 조약 또는 국제관습법에 위반한 불법행위책임을 묻는 외국인이 제기한 민사소송의 관할을 연방지방법원에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조항은 원래 1789년에 제정된 법원법의 내용 중 하나였다.
Sosa v. Alvarez-Machain, 542 U.S. 692, 729-730 (2004) 사건에서 미국 연방대법원은 The Paquete Habana 사건을 인용하면서, 연방법원이 제한적으로 연방보통법의 방식으로 실체법적 규율을 도출해낼 수 있으며, 법원은 2세기 동안 미국 국내법이 국제관습법을 승인하는 것을 확인해 왔다고 판시하고, 외국인 불법행위 구제법 § 1350은 심각한 국제법 위반을 이유로 개인이 제소할 수 있도록 하는 보통법에 실질적 효과를 부여한다고 판결한 바 있다.(다만 연방법원에서 외국인 불법행위 구제법과 관련한 국제관습법을 인정하는 범위는 매우 제한적이다.)
2차대전 당시의 과거 역사에 대한 사법적 반성을 한 사례로, Korematsu 사건을 인용하고 싶다. 여러분이 모두 잘 알다시피, Korematsu v United States, 323 U.S. 214, 216 (1944) 판결은 일본계 미국시민이라는 이유만으로 2차대전 중 거주지를 떠나라는 명령을 따르지 않은 행위를 형사처벌할 수 있다고 연방대법원이 6:3으로 선고한 사안이다.
40년 후 새로운 증거에 근거해서 유죄판결을 파기한 연방지방법원의 판결[Korematsu v. U.S, 584 F. Supp. 1406(N.D. Cal. 1984), 1988]의 사과 및 보상입법의 제정 등을 통하여, 미국은 역사의 법정에서 과거 국가의 잘못을 교정하였다.
(4) 2001년 개입과 국가주권에 관한 위원회(International Commission on Intervention and State Sovereignty)의 보고서인 “보호할 국가의 책무(The Responsibility to Protect)"는 국가의 “보호의무(responsibility to protect)"라는 개념을 도입하였다. 그 핵심적 내용은 “주권국가는 대량학살, 강간, 기아 등의 피할 수 있는 재앙으로부터 자국의 국민을 보호할 책임이 있다.”라는 것이다.
외교적 보호권에 관하여 남아프리카공화국 헌법재판소는, 2004. 8. 4. “정부에게는 국제인권규범의 심대한 침해를 막거나 회복시키기 위하여 자국의 시민을 외교적으로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 정부가 이러한 헌법적 의무에 반하여 외교적 보호를 고려하기를 거부한다면, 헌법재판소가 정부로 하여금 외교적 보호 요청에 대하여 적절히 고려할 것을 정부에 명령할 수 있다.”라고 선언한 바 있다.(Kaunda and Others v. President of the Republic of South Africa, Case CCT 23/04. 2004 (10) BCLR 1009, reprinted in 44 ILM 173 (2005))
제5장 결론
이 판결은 일본 정부를 직접 대상으로 한 것은 아니고, 어디까지나 한국 국내에서 정부의 부작위가 위헌이라고 확인한 것이다. 이 사례를 통하여,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한국의 헌법재판소와 헌법재판 제도에 대한 소개가 되었기를 희망한다.
또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구제를 위하여 한일간 청구권협정 제3조에 따라 분쟁해결의 절차로 나아갈 의무가 한국 정부에 있다는 한국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국제인권의 보장, 국가의 기본권 보호 책무, 여성인권의 보장 등 여러 측면에서 상당한 의미가 있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최초로 법률의 위헌 여부에 대한 심사를 시작한 이래, 표현의 자유, 프라이버시권, 평등권 등 기본권 보장을 선도하는 주요한 판결들을 내려왔고, 많은 미국의 법률가들이 이를 위하여 노력해 왔다. 이에 대한 경의를 표하며, 이 자리에 있는 하버드 로스쿨 재학생 여러분이 이러한 미국의 인권 보장을 앞으로도 선도해 나갈 것이라고 믿는다.
한국의 역사가 신채호의 표현을 빌자면, 역사를 잊은 인류에게는 미래가 없다. 앞으로 다시는 이러한 비극적인 인권침해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국제사회가 공동으로 대처하여야만 하는 이유이다.
한국 사법부도 보편적 인권의 확인과 보장, 국제협력을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
긴 시간 경청해 주신 것에 대하여 감사드립니다.